권순영, 양유연,
이윤주, 홍인숙,
나를 말하는 어떤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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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스스로 이야기를 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재요약하고 재해석하고 있었던 것이다.
-Catherine Kohler Riessman, Narrative analysis.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자신 내부의 것들을 곱씹으며 재평가하거나 스스로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하는 자신의 이야기는 순차적이지도, 논리정연하지도 않다. 오히려 자신을 곱씹어 하는 이야기는 놀랍도록 집요한 관점을 취하거나 자의적으로 왜곡되기도 하고 무의식적으로 시공간을 초월하여 재조합, 재해석 된다. 여기 네 명의 작가는 '나'로부터 출발하여 각자의 개인 내러티브를 자기 자신만의 방법으로 이야기 해 나간다.

권순영 작가는 콤플렉스라고 규정지을 수 있는 자신 내부의 요소들을 토해내는 방식으로 작업을 해나간다. 그의 그림은 귀여운 캐릭터와 아기자기한 색채들로 눈을 현혹시키지만 그 너머의 실상은 자신의 병적 정서를 담고 있는 '비천한 이야기'-작가 曰-들이다. 그림 속, 익명의 만화 캐릭터의 행동과 표정은 그가 현실에서 표출할 수 없었던 퇴폐적이고, 폭력적인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양유연 작가는 아물지 못한 자신의 상처 즉 불안정한 감성을 그림으로 그리며 더듬는다. 작가는 자신을 투영시킨 '소녀'-감정덩어리-라는 인물에서 서서히 인체의 한 부분인 손으로 집중하게 된다. 작가에게 손은 자신을 어루만져주고 달래주는 동시에, 아물지 않은 상처를 굳이 더듬어 보는 역할을 하며 익살을 떠는 존재이기도 하다. 작가는 그림 안의 손을 점차 위와 같은 역할을 넘어 물리적 고통을 쏙 빼고 스스로 존재하도록 그리는데 이러한 행위는 그가 거리를 두고 스스로를 보기 시작하는 태도와 닮아 있다.

이윤주 작가는 스스로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바라보기 위한 하나의 방법-현실의 그림자로써, 작가 曰-으로 그림을 그린다. 작가는 그의 현실인 결혼과 출산 그리고 육아를 경험하며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스펙트럼을 사회가 교육하고 강요하는 '아름다워야 하고 자기 희생적 이어야 하는 출산과 모성애'에 가두지 않는다. 즉, '어머니'라는 역할에게 허락되지 않은 일종의 금기시된 미움, 분노, 슬픔 등과 같은 감정들을 '가족애'와 '모성애'와 함께 동등하게 담아낸다

홍인숙 작가는 자신이 살아온 삶 그리고 느껴온 감정들을 함축시켜 화면에 그려낸다. 이렇게 함축된 그의 삶의 이야기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생겨나는 사랑, 그리움과 아쉬움 그리고 그 감정을 겪으며 생기는 자신에 대한 반성, 반성 후 따르는 자신의 변화와 변화에서 오는 고통 그리고 이 모든 생각의 흐름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관한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이나 가족의 얼굴과 사적인 이야기를 품은 사물들 그리고 작품의 제목에 투영 시킨다. 그의 작품은 얼핏 단순해 보일지 모르겠으나 그 작업과정은 여러 단계를 거친 것이다. 작가는 드로잉을 하고 필요한 곳에 색을 칠하고 또 조각조각 종이판을 만들어 색을 찍어내는 과정을 통해 작품을 완성하게 된다. 함축적으로 자신을 말하기 위한 단순하지만은 않은 작업과정은, 작가가 자신의 삶을 통해 얻게 되는 개인적인 깨달음과 맞닿아 있다.

관람자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언어로 자신을 이야기 하는 이 그림들을 단순하게 ‘좋다’또는 ‘싫다’라고 말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긍정과 부정의 감정들은 관람자 내면의 어느 한 부분이 이 그림들과 반응을 한다는 것이고, 우리는 이 반응을 통해 자신 내면의 부정해 왔지만 존재하는 면면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주민, 갤러리 소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