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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산

 

​박찬경

2008. 12. 13 - 2009. 1. 11

흔히 ‘계룡산’ 에는 두 개의 상반된 이미지가 겹쳐있다. 하나는 미신의 세계이며, 다른 하나는 ‘민족 신비주의’에 대한 동경이다. 내게 그것은 우선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실제로 나는, 우연한 기회에 마주친 계룡산을 보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충격에 휘말린 적이 있다. 백두산이나 히말라야에 가면 더 큰 충격을 받을지 안 가봐서 모르겠지만, 내게는 이미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리고 하나의 일반적인 진실이 있다. 유교를 국교로 삼은 조선시대는 물론, 일제 강점기와 근현대를 거치면서 무속과 선가(仙家)와 같은 한국의 전통 종교문화는 계속 억압되었다. 서구화와 세계화를 거치면서, 민간신앙이나 전통종교는 기껏해야 관광자원이나 신비주의 상품으로 인식될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한국의 민간신앙, 신종교, 산악숭배 등에 대해 교리의 세련성을 잣대로 삼아 비판하는데 익숙하다. 그러한 잣대 자체가 왜곡되었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는다. 

기도문은 주문보다 순수하고, 종교상징은 부적보다 합리적이며, 찬송가는 독경보다 세련된 것이라는 일반의 인상은 생각보다 깊다. ‘상제(上帝)’는 최초에는 God의 단순 번역어였지만, 와인이 막걸리보다 웰-빙이 되었듯이 God은 상제 위에 있는 존재처럼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근 100여년을 통해 우리나라에서 급성장한 제도종교의 대부분은 기복과 신비체험, 해원(解寃)과 몰입을 노골적으로 활용했다. 무속신앙이 기독교 등에 스며들어, 신비주의 색채가 강한  ‘한국적 종교문화’를 낳았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거대 외래 종교가 지역의 종교전통을 활용하면 할수록, 자신을 ‘그들이 규정한 미신’으로부터 구별할 필요는 강해진다. 거대 외래 종교가 자신을 미신으로부터 끊임없이 구분하려 할 때, 미신으로 취급되는 지역의 판타지들 - 지상천국, 호랑이, 산신, 상제, 염라대왕과 약사여래, 그 밖에 수없이 많은 신성한 존재들은 오히려 그들 ‘반(反)미신’ 속에서, 그들이 잘 모르게 살아간다. 여기서 상황을 뒤집어 읽어 볼 가능성이 생긴다. 전통 민간신앙이 정신의 서구화에 의해 변형되고 축소되었다고 보는 것보다, 그 변형의 전 과정이 오히려 위기에 처한 전통 신앙의 지혜로운 처신이라고 보는 편이 더 옳지 않을까. 천주교 개신교가 ‘토착문화’를 이용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전에, 무속과 선가에서 기독교를 이용하거나 혹은 허용한 것은 아닐까라고 물을 수도 있지 않을까. 급기야 민간의 유불선무(儒彿仙巫) 기독교 통합신앙은 보수적 종교엘리트, 종교관료들의 무의식을 끈질기게 괴롭히는 것은 아닐까. 

현대과학기술의 반대편에 종교가 있다면, 종교의 반대편에는 미신이 있다. 나는 현대과학기술도 싫고 제도종교도 싫다. 그렇다고 ‘미신’을 따를 수도 없다. 유물론자의 차가운 머리도 내 몫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현대과학기술의 위험을 경고할 때의 종교는 좋다. 종교의 무의식을 건드리는 미신은 좋다. 미신을 거부할 때의 합리적 사고는 좋다. 내게 계룡산은 그런 생각의 가운데 우뚝, 또는 흐릿하게 서있다. 

나는 이런 태도가 나만의 것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리데기, 동학의 상제, 청산거사(靑山居士), 그리고 할머니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속의 귀신은 현대문화가 허세를 부리며 관용하는 여유분이 아니라, 현대문화를 뿌리에서 뒤흔드는 무의식일수 있다. 동북아의 고딕(Gothic)문화라는 형용모순이 왜 불가능한가? 맹수와 대화하는 신화의 서사구조와 대량 도축하는 사회의 윤리는 감히 비교조차 될 수 없다. 가장 나쁜 경우, 혹세무민하는 사교(邪敎)의 정치조차도 단순한 합리주의적 잣대로 재단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동기와 가치로 얽혀 있다. 

집단적으로 유토피아를 추구하는 것은 부패하기 쉬우며 위험하지만, 그것을 꿈꾸는 것은 모두의 권리이다. 그리고 그런 권리를 찾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위대하거나, 또는 내몰린 사람들이 언제나 있었고 계속 있을 것이다. 생시몽(Saint-Simon)과 수운(水雲) 최제우 사이의 거리는 그렇게 먼 것일까. 일부(一夫) 김항과 푸리에(Fourier)는 내게는 비슷한 사람처럼 보인다. 제도교육의 기회나 보편적 행복을 빼앗긴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남달리 총명한 사람, 형이상학적인 고뇌에 빠진 이들이 계룡산에, 지리산과 묘향산에 갔을 것이다. 그 중에는 진짜도 있고 가짜도 많겠지만, 거짓과 진실, 사실과 환상을 손쉽게 가려내려는 현대 도시인의 싱거운 욕망 자체가 먼저 반성되어야한다. 

동시대를 사는 어떤 여인이 컴컴한 밤중에 산신기도를 하러 깊은 산속을 거닐 때, 대체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 아마 차를 장만하거나, 유명해질 궁리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도 가끔은, 소나무와 기암괴석와 산이 보이는 꿈을 꾼다.


박찬경


* Sindoan: A round valley under the Gyeryong Mountain, in the direction of Daejeon City. The site, where Gyeryong City is located at present, had been set up as the capital of the newborn Choseon Dynasty in favor with LEE Seongkye the Grand Founder?that is the origin of the name ‘Sin-doh-an(新都內),’ whose meaning is ‘new capital city.’It has been believed to be the center of Utopia to come among various neo-traditional and ethnic religions and the Punsu-Tocham(風水圖讖) theory, which seeks to know the future by interpreting the signs of everything in nature. During and after the regime of the Japan Empire, hundreds of religious organizations had proliferated here. In 1984, the Gyeryong unit under the headquarters of the three armed services stationed in Sin-doh-an, taking away almost residential and religious facilities around here. 


Two oppositional images have been projected upon the Gyeryong Mountain. The one is a world full of superstitious forces the other is an enchanting vision of national mysticism. For me, it was above all an object of fear. Once I was struck dumb with incomprehensible shock to see the Gyeryong Mountain. It may be much more overwhelming to face the Baekdu Mountain or the Himalayas, but that was enough for me. 

And a general truth: traditional culture of religion has been continuously suppressed in the Choseon Dynasty, which established Confucianism as the state ideology, as well as in the regime of the Japan Empire and the following modern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Under the tendency of westernization and globalization, traditional religions and folk beliefs are recognized as a tourist attraction or a potential commodity of mysticism at the most. We easily criticize folk beliefs, neo-traditional religions, and mountain worships, jeering at their naive faith and crude theories, without considering whether the measure with which we judge them is already perverted. 

The common impression about folk religions is more deep-rooted and stubborn than one may think: the prayer seems purer than the incantation; the religioussymbol seems more rational than the charm; the hymn seems more sophisticated than the sutra chanting. Although ‘Sang-jeh(上帝)’ was originally a mere translation of ‘God,’it sounds inferior to God by the same mechanism that makes red wine more well-being than Makgeolli, which has quenched our thirst for hundreds years. Most of institutional religions, however, have explicitly appropriated the tradition of Kee-bok(祈福, wishing good fortune), Hae-won(解寃, soothing grudge), and spiritual ecstasy to grow rapidly in S. Koreafor the last century. It is well known that the ‘S. Korean culture of religion’with distinctive mythical features has been brought about mainly through combination of shamanistic tradition and Christianity. 

The more the major religion from abroad utilizes the local religious tradition, the more it needs to distinguish itself from what it determines as superstition. Nevertheless, it is the very ‘anti-superstition’ where the local fantasies with the stigma of superstition keep up living surreptitiously?the earthly paradise, the fierce tiger, the spirit of mountains, the heavenly emperor, the lord of the dead, and all the other sacred beings. Here is a possibility to put the current situation the other way that the folk beliefs have wisely metamorphosed to survive the crisis, not that the general mental modernization of S. Korea has violently marginalized the traditional religions. Before concluding that Roman Catholicism and Protestantism have exploited the local culture, we can suppose that shamanism and Zen Buddhism have made use of?or at least allowed?Christianity. How about to assume that the resulted combination of Confucianism, Buddhism, Taoism, shamanism, and Christianity in people is still vexing the unconscious of the conservative religious elites and officials? If the religion is in the oppositeside of the modern science and technology, the superstition is in the other opposite side of the religion. I like neither science-technology nor institutional religion; and yet, I cannot follow the so-called superstition. I am not a cool-headed materialist I like the religion when warning of blind techno-science; I like the superstition when undermining the unconscious of religion; and yet, I like the rational thinking when refusing the superstition. The Gyeryong Mountain stands outstandingly but ambiguously among the incessant impressions. _ Artist Statement


Park Chan-Ky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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