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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호라이즌스
New Horizons


신재민
플레이스막2
더 소소 기획
2024. 6. 8 - 6. 29

 

전시 서문

 

신재민

 

    나에게 회화 작업은 현실이라는 오픈 월드형 게임의 모험을 이어 나가는 과정이 남긴 궤적임과 동시에, 모험을 통해 수집한 다양한 풍경과 장소를 평면이라는 조건 안에서 재구현하는 행위이다. 데이터로서의 풍경과 일상적 드로잉에 기반한 회화적 상상은 작업 안에서 융화돼 특정한 ‘기능적 장소(the functional site)’[1]로서 구현된다. 구현된 시공은 비선형적인 가상의 서사를 지닌, 실재계와 호환되는 한 편의 영화 또는 하나의 게임처럼 나의 삶에서 작동한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사유 속에서 얻은 풍경 조각들을 평면에 구상된 여러 대상에 덧입히며 새로운 시공을 만들고 작업 안에서 모험을 이어가며, 완성되는 작품을 통해 여정의 의미를 정리한다. 나에게 회화는 현실에 매개된 일종의 ‘다른 세계’를 향한 통로 역할을 한다.

 

    여러 실재와 가상의 공간을 탐험하는 것은 작업의 주요한 원동력이 된다. 그 장소가 무의식으로서의 꿈의 세계든 오픈 월드형 디지털 게임의 세계든 상관없이, 신체가 움직인다고 인지될 수 있는 조건에서 마주하게 된 특정한 감각들은 회화 작업의 소재가 된다. 언제든 평면 작업을 위한 새로운 경험들이 쌓이며 축적되고, 화가로서의 감각은 현실이라는 경계 없는 오픈 월드가 구체적인 실체를 갖게 해준다.

 

    회화의 풍경 안에서 나는 가상과 실재 각각의 세계에서의 불감증이 보완됨을 느낀다. 회화라는 중간자, 물질로서의 매질은 나를 회화 속 오픈 월드로 이끄는 포털이 된다. 매체와의 상호작용은 내가 만들어가는 오픈 월드와 살이 닿는 과정이다. 모험의 끝에 나타나 완성될 풍경을 상상하며 그곳을 구축하고 소요한다. 단단한 회화의 지지체, 물감 등 작품을 구성하는 모든 물질이 유영하는 작업 과정 안에서 한 점의 쿼크 단위로, 아니면 하나의 픽셀 단위로 양자화되는 것 같다. 캔버스를 비롯한 그 위의 질료적 층위들이 가상이자 실재인 다중적인 존재로 변신한다.

 

    지지체로써의 캔버스는 내가 인지하는 오픈 월드를 담아낼 수 있는 유일한 디바이스인 것 같다. 여러 색상의 물감은 나라는 프리즘을 통해 입자와 파동으로 재맥락화되어 가상의 평면 장 안에서 진동한다. 그림에서 물질과 환영, 가상과 실재에 대한 이분법은 더 이상 의미를 갖지 않는다. 평면이라는 환영적인 규격 안에서 나만의 오픈 월드가 펼쳐진다.

 

    회화는 마치 유년 시절에 접한 게임기처럼 마법과도 같은 신비한 현상으로 나에게 다가오는 듯하다. 회화 속 오픈 월드가 어떠한 환희감을 자아낼 수 있을지, 어떻게 나의 현재를 설명할 수 있을지, 그리고 현실을 어떻게 만들어가게 될지 고민하며 작업을 이어간다.

 

[1] 제임스 마이어(James Meyer. 1962 -)가 미니멀리즘의 '즉자적 장소성'에 이어 고안한 개념으로서, 미술의 영역에서 장소가 갖는 의미를 유물론적 범위에 국한하지 않고 사이버 스페이스적 성격을 지닌 장소성으로 확장한다.

 

   납작한 공백의 영역—회화는 화면 너머에 존재하는 미지의 영역을 찾아내는 일이다. 수평선 너머엔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 있음을 몸소 증명한 최초의 항해사의 용기처럼, 캔버스 속에 더 넓은 세계가 있음을 믿고 그 감각을 유지해야 한다. 신재민에게 회화는 사유와 일상의 궤적을 심리스(seamless) 오픈 월드 게임의 형태로 드러내는 것이다. 오픈 월드 게임은 유저의 자유도가 높아, 개발자가 정해 놓은 결과에 맞춰 이야기가 선형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유저가 유기적으로 세계를 탐험하며 자신만의 루트를 구축할 수 있다. 게임 속에서 산책을 하거나 다른 길로 새는 것이 가능하며, 소소한 이벤트를 즐기거나 발견한 재료들로 자신만의 아이템이나 건축물을 만들 수도 있다. 오픈 월드 게임이 유저의 재미를 위해 공간 곳곳에 다양한 요소를 흩뿌려 놓은 것처럼, 좋은 풍경에는 여지가 필요하다. 신재민이 오픈 월드 게임의 특성을 회화에 적용하는 이유는, 게임의 상호작용성을 회화를 전개하기 위한 방법론에 반영하여 양방향적이고 유기적인 서사를 지속적으로 이어가기 위함이다. 플레이스막2에서 개최된 《뉴 호라이즌스》에서는 말랑하게 존재하는 실재를 회화로 구체화하기 위한 신재민의 고민과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신재민에게 풍경은 회화를 통해 이음새 없이 펼쳐지는 오픈 월드를 여정하는 것이다. 그가 회화를 통해 펼치는 지형은 디지털 세상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고, 작가가 일상을 통해 체험하는 물리적인 환경과도 연결된다. 그는 산책을 통해 새로운 공간을 발견하는 것을 즐겁게 여기고, 산책 중에 바라본 장면들, 사색을 통해 떠오르는 여러 감정의 형상들, 그리고 습관적으로 진행되는 낙서들을 재료로 그림을 그린다. 작가에게 회화는 꿈결처럼 시선에 달라붙는 기억이나 감정의 형상들을 실재하게 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림 속에는 작가의 세계가 낯설지만 다정해 보이는 도상들이 무해하게 펼쳐지며, 그 속으로 진입한 이들에게 세계를 이해하고 탐구하는 방법을 강요하지 않는다. 신재민의 오픈월드는 대상을 발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 거시적인 풍경으로 발전해가는 중이다. 《뉴 호라이즌스》에 전시된 작업 중 <가디언 출신 천족 예술가>(2022)나 <콩이네>(2023)와 같이 상대적으로 먼저 진행된 작업들은 풍경보다는 정물처럼 도상을 본격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시기는 회화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정리해 보기 위해 영웅, 검, 페르소나, 들꽃처럼 파편적으로 떠오른 대상에 개별적으로 집중해 보던 시기였다. 이렇게 물체에 초점이 맞추어 있던 작업으로부터, 근작으로 다가올수록 관념적인 부분보다는 시공간적인 풍경으로 시점이 확장된다. 스펙트럼의 확장은 작가가 자신의 조형언어를 실험하고 다듬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최근엔 세계관의 토대를 견고히 하되 서서히 화면을 비워나가며, 확장되는 풍경에 온전히 주목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신재민의 풍경은 너른 시야에 드리워지는 백일몽처럼 꿈과 현실을 골고루 감싸고, 물리적으로 현상하는 것으로부터 끝없이 확장되는 가상의 세계를 아우른다. 두 세계는 분리되지 않고 작가의 삶 속에서 융합되고 공존한다. 그는 사물의 표면에 깃든 (어쩌면 이면이 되어버린) 감정에 집중한다. 물질은 현실과 가상의 벽을 투과할 수 없지만, 모의 현실인 꿈속에서 느낀 기쁨과 슬픔이 가짜가 될 수 없는 것처럼 감정과 감각은 어디서든 실재한다. 산책은 단순히 몸을 이동하는 일이 아니라 특별한 목적 없이 어딘가를 거닐며 호흡과 생각을 환기하는 일이다. 그는 산책을 통해 주변 환경을 관찰하고 그 안에 깃든 요소들을 발견하는데, 오픈 월드 게임 속 지형과 환경을 탐구하는 것도 포함된다. 신재민은 시공간에 위계를 두지 않고, 몸으로 기억하는 길이나 눈과 머리로 체험하는 길을 동등하게 여긴다. 게임 속 세상을 거니는 것과 발품을 팔아 돌아다니는 것을 같은 체험으로 여기며, 그 안에서 발견한 요소들을 인벤토리에 아이템을 저장하듯 기록한다. 지구와 디지털 세상을 가리지 않고 체득된 장면들은 회화 안에서 중첩된다. 다중적인 세계를 솔기 없이 이어나가는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 시간을 일상에서 분리하지 않는다. 자연 친화적인 재료를 써서 신체에 부담을 덜 준다거나, 작업의 시작과 끝을 마무리하는 루틴을 정해 몰입을 흐트러트리지 않으려 한다. 발견한 장면들은 사진이나 스케치 속에 담기기도 하고, 때로는 낙서되기도 한다. 낙서는 손에 동화된 눈의 움직임을 떠올리며, ‘그리기’에 집중하는 일이다. 그의 작업에서 낙서는 무의식에 시그널을 보내고 손을 통해 전보처럼 이미지를 전달받거나, 때로는 긍정적인 미래를 소망하고 마음을 가다듬는 의식이 되기도 한다. 신재민은 낙서를 통해 마주하거나 경험했던 것들이 내면에 어떻게 잔류하고 있는지 톺아본다.


   신재민은 안료와 미디엄 같은 입자의 엉김이 일궈내는 회화의 물리적 실체와 작가의 심상을 펼쳐낼 토대이자 ‘가상’으로 존재하는 회화의 양면성에 주목한다. 그는 유화를 주로 다루지만, 이는 앞서 말한 회화에 양가적으로 존재하는 실재성과 가상성을 중화시키기 위한 연구의 일환이다. 그에게 물감의 안료와 디지털 드로잉의 픽셀은 작가의 필적을 구축하는 입자로서 동등한 위계를 가진다. 언어를 번역하기 위해서 말의 근본을 파악하고 문장을 분해하고 재조립해야 하는 것처럼, 신재민은 부유하던 생각과 감각을 회화를 통해 자신의 세계로 온전히 환원하기 위한 가장 순수한 단위[1]를 추적한다. 이는 작가가 평소 정보에 다가갈 때 근본을 파악하려는 태도로부터 비롯된다. 신재민은 이미지의 최소 단위는 기하학이라는 생각을 했다. 기하학의 요소가 작업에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회화의 물질적 성격과 가상의 세계를 드러내는 매개로서의 양면적 성격에 대한 작가의 고민을 정리하고, 평면을 구상할 수 있게 돕는다. 점, 선, 면, 그리고 원, 세모, 네모 같은 균형을 이루는 요소들이 정처 없이 떠도는 생각들을 한 세계로서 존재하게 하는 유연한 질서를 부여한다. 그는 무한대를 더 이상 나눌 수 없을 때까지 쪼개었을 때 남는 최소의 단위이자 원점(0,0)을 상징하는 추상적 개념인 모나드(Monad, 1)나 반복과 새로운 모나드(시작)를 상징하는 데카드(Decad, 10) 같은 수비학의 개념을 통해 형상을 연구해 보기도 하고, 프로그램에 좌표를 입력하여 코드를 이미지로 소환한 뒤 그것을 다시 <퍼펙트 월드>(2023)로 그려내기도 했다.


   신재민에게 회화는 자신의 세계를 온전히 펼치기 위한 발판이다. 그가 천착해온 회화는 평면의 지지체라는 조건 안에서 이루어지지만, 이는 이야기를 납작하게 편집하기 위함이 아니라 서사를 더 넓은 지형으로 확장하는 다른 세계로의 포털을 개방하기 위함이다. 회화는 작가만의 시점으로 새로운 중력과 시공간을 구축할 수 있는 매체이다. 그에게 캔버스와 프레임은 장면을 박제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 이면으로 더 멀리 바라보고 나아갈 수 있음을 알리는 입구이다. 회화가 작가를 매개로 포착된 시공간이라고 생각해 보자. 시간은 어딘가에 고여있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시간은 사실 허구이며, 우리가 시간이라고 믿는 것들은 과거, 지금, 미래라고 여겨지는 임시 단위로 체감되는 경험들이다. 시공간은 무작위로 벌어지는 사건을 정리하여 납득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공유될 수 있게 한다.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며 역행할 수 없다는 고집스러운 위계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위계는 감각 속에서 희미해진다. 꿈과 현실, 가상과 실재, 그리고 과거와 미래는 늘 포개져 있고, 화가는 그림을 그림으로써 여러 시간이 맞닿은 자리에 존재하는 지금을 포착한다. 회화는 영원히 불어나는 시간을 납작하게 드러낸다. 반대로 말하자면, 캔버스는 작가의 세계를 무한히 펼칠 수 있는 창구가 된다. 작가가 자유롭게 차원과 중력을 펼쳐낼 수 있기에 드러난 적 없는 것, 잡히지 않지만 명확한 것들을 드러낼 수 있다. 그렇기에 회화는 실체 없이 부유하는 것들에게 지반과 그곳을 디딜 수 있는 발을 부여하는 다정한 행위이다. 신재민은 자신의 세계를 정리하기 위한 공식을 찾고 있다. 무언가를 고착시키거나 패턴화하기 위함이 아니라, 더 멀리 도약하여 더 넓은 세상을 탐험하기 위한 공식 말이다. 단단한 기저를 가졌지만 유연해서 얼마든지 새로운 이야기로 확장될 수 있는 풍경을 기대해 본다.
 


문소영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큐레이터)
 

[1] 쿼크(Quark)

[신재민 아티스트 토크]

 


일시: 2024.6.22 오후 3시
장소: 플레이스막2
참석자: 신재민(작가), 문소영(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큐레이터), 염하연(전 월간미술 기자)
정리: 염하연(전 월간미술 기자)


염하연(이하 염) 전시나 작업을 말과 글로 설명할 때마다 그 자체로 존재하고 있는 것을 구태여 포장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이 좌담은 그런 난감함에서 조금 자유로웠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문소영 큐레이터님, 신재민 작가님과 작업에 대한 생각을 일기와 에세이 형식으로 교환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과정 덕분에 경직되지 않은 자유로운 시선으로 작업을 이해할 수 있었고, 그 결과물을 이 자리에서 공유하게 되어 감사한 마음이다. 오늘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겠지만 먼저 세계관에 관한 포괄적인 질문부터 드려야 할 것 같다. 이번 개인전은 2022년부터 현재까지 해 온 작업을 갈무리해 보여주는 자리다. 개인전에서 주요하게 보여주는 신작에는 매우 사실적이면서도 가상세계에 걸쳐 있는 것처럼 초현실적인 풍경이 두드러진다. 작가님은 작업 노트에서 자신에게 회화란 현실에 매개된 일종의 ‘다른 세계’를 향한 통로 역할을 하며, 이 다른 세계를 표현하는 방식을 오픈 월드 게임의 세계관에서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작업이 오픈 월드 게임의 세계관과 어떻게 닿아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신재민(이하 신) 내가 작업에 참고하고 있는 개념은 게임 메커니즘 중 하나인 ‘심리스 오픈 월드(Seamless Open World)’이다. 심리스 오픈 월드란 간단히 말해서 한 위치에서 다른 위치로 이동할 때 로딩 구간 없이 자유자재로 비선형적인 이동을 할 수 있는 가상 공간이다. 그 가상 공간에서 느껴지는 현실감은 가상과 실재를 구분할 수 없게 만든다. 현실과 가상 공간의 위계를 인식하지 않게 되면서 실제로 산책하면서 수집한 시공간의 조각들과 꿈에서 본 것들, 게임 속에서 만났던 풍경 등을 가져와 회화라는 구체적인 결과물로 풀어내고 있다. 어쩌면 유화는 나의 세계를 실재하게 해주는 유일한 디바이스라는 생각이 든다. 스튜디오형 작업이 주는 특유의 물리적 조건 역시 삶의 이면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소중한 조건이라 생각하며 그림 그리기를 마치 습관처럼 여기고 있다.


문소영 (이하 문) 작가님 말씀대로 현실과 상상의 위계를 흐리게 하기 위해 가장 적합한 매체는 회화라고 생각한다. 전시 제목인 ‘뉴 호라이즌(New Horizons)’처럼 작가님도 회화를 통해서 세상을 탐구하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해 나가고 있는 것 같다. 작가님 이야기를 듣고 예전에 읽었던 정수진 작가님의 ‘부도이론’이 떠올랐다. 회화 속에서 무한하게 펼쳐지는 우주를 논리적인 체계로 정리하고자 하는 시도를 읽을 수 있었고, 작업이란 파편처럼 모인 단상을 별자리처럼 정리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작가님이 작업실에서 때 스케치와 생각을 정리하기 위한 노트를 보여주셨는데 정수진 작가님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었지만 작가님 역시 자신의 세계를 정리하기 위한 공식을 찾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무언가를 패턴화하기 위함이 아니라, 타당하지만 유연해서 얼마든지 새로운 이야기로 발전시킬 수 있는 근거를 찾고 있는 것 같다. 염 작가님이 자기만의 공식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개인적으로 그 공식 중에 하나가 두 가지의 대치되는 세계가 한 화면에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한다. 가상의 세계와 생태적이고 서정적인 세계가 한 화면에 여러 개의 레이어로 겹쳐 있는 느낌이 매력적이고 작업을 구체적으로 구석구석 살펴보게 하는 힘을 주는 것 같다.

정수진 작가님이 폭발적인 관념체들을 정리하고 증명하는 과정은 수집하듯 화면을 일구는 나의 방식과 비슷한 지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가상 공간의 소재들을 가져오면서도 생태적인 풍경을 그리는 이유는 가상 공간이든 실재의 공간이든 아늑하고 자연친화적인 공간을 좋아하는 편이고, 일상적이고 아름다운 공간에서의 산책이 가장 중요한 일과 중 하나이자 작업의 기반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산책과 일상생활에서의 산책을 이어나가고 매듭지으면서 회화라는 단단한 풍경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작가님의 신작에서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것은 서사나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은 작은 요소들이다. 동굴, 빗방울, 꽃 등의 기호에 가까운 사물들이 그림 전체의 레이아웃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여러 작업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도상에 가까운 것들도 있다. 관객들이 이 요소들이 품고 있는 서사에도 궁금증을 가질 것 같다.


창작자로서도 관람자로서도 이야깃거리나 서사가 있는 것을 좋아한다. 이러한 이유로 구상 회화를 이어가는 것 같기도 하다. 나의 경우에는 일상 생활에서 맞닥뜨린 물체, 현상, 생각들을 낙서하듯 메모하고 드로잉하는 습관이 있고, 이후에 그것들이 하나하나 되살아나 회화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예를 들어 (2024)은 올해 2월 대학원을 수료할 때쯤 그렸던 그림이다. 하나 예를 들자면 그림 속의 양피지는 당시 갈피가 잡히지 않는 상태에서 좋은 소식이 날아들었으면 하는 마음에 그렸던 것이다. 모든 것들이 일상의 사건과 감정과 맞물려 있다. 생각해 보면 내 그림은 메모와 낙서를 실체화시킨 결과물이자 지극히 개인적인 서사들이 펼쳐지는 공간이다. 문 무엇인가 거창한 메시지를 전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워 보이는 태도가 흥미롭다. 풍경 뿐만 아니라 작가님이 체험하는 세상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전시된 작품들 중에는 풍경화라기보다는 정물화처럼 객체가 더 드러나는 작업들이 보인다. 작은 객체에서 시작해서 풍경으로 나아가는 변화의 계기가 있었다면 무엇이었는지 설명 부탁드린다.

2년 전 대학원에 입학했을 때는 사실 그림 그리는 게 좋았을 뿐이었어서 무턱대고 그리고 싶은 것을 그렸다. 산책하면서 보는 식물들, 들꽃, 가상 게임의 아바타와 아이템 같은 것들. 그러다가 언젠가 찰흙을 만지면서 일상 이야기를 나누는 수업에 참여했던 적이 있다. 그 때 회화작가로서의 제스처 역시 이렇게 가볍고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이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림 안에서 굳이 대상을 붙잡거나 제한을 걸어야겠다는 강박을 서서히 버리면서 점차 풍경에 집중하게 되었다. 요즘은 장재민 작가님이나 써니킴 작가님처럼 시적이고 서정적인 풍경을 구축하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회화가 일상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혹은 내가 어떤 생각을 할지에 따라 다양한 변화가 생길 것 같다.


작업실에서 작가님이 최근에 작업중인 회화를 봤는데, 또 다른 변화를 예고하고 있는 것 같았다. 화면이 3면으로 분할되어 있었고 서사를 가진 작은 요소들은 최대한 빠져 있었다. 색채, 모티브 등 모든 것들이 현재 작업과는 다른 결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첫 번째 개인전부터 엄격한 조형 언어를 구축하고 그것의 형태를 변형해서 차례로 보여주는 작가들을 종종 만나게 되는데, 작가님은 그 반대의 지점에 있는 것 같다. 굳이 하나의 흐름으로 수렴하려고 하지 않고 다양한 시도를 하는 태도는 어쩌면 예술이라는 테두리 내에서만 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업을 오래 하다 보면 표현 방식이 고정되는 경우가 많다. 패턴화된 조형 언어를 구축하는 것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이 궁금하다.


나 역시 언젠가는 나만의 고유한 조형 어법을 구체화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처음부터 억지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계곡물처럼 자연스럽게 흐르다 보면 가장 효율적이고 나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문 모든 매체를 통틀어 작가가 누구인지를 가장 속일 수 없는 매체가 회화라고 생각한다. 회화는 작가의 움직임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회화는 체화된 매체인 만큼, 시간을 들여 솔직하게 노력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작가와 작업의 결이 맞춰지면서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서서히 구축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다양한 이야기를 담기에 회화가 제한적인 매체일지도 모르겠다는 의문도 든다. 물론 회화로도 모든 것을 말할 수 있지만 영상이나 설치 같은 다른 매체에 대한 갈증은 없는지 궁금하다.

굳이 왜 회화여야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들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단순하다. 창작을 하는 입장에서 가장 자연스럽고 익숙하게 느껴지는 매체가 유화이고, 유화만이 갖는 매체적 특성이 다른 것으로는 대체가 되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의 감각도 가상 화면에서의 감각과는 전혀 다르다. 가끔 붓이 신체에서 이어진 또 하나의 도구처럼 느껴진다는 생각을 한다. 회화의 전반적인 공정 자체를 진심으로 즐기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우선 캔버스 틀 안에 있는 이 세계를 가장 나답게 만드는 것이 평생의 목표라는 생각을 하고 있고, 이것을 굳이 의도적으로 다른 매체로 확장하려는 생각은 아직 없다. 다만 조금 더 다양한 회화의 방식을 시도해 보고 싶은데, 예를 들어 벽화라든가 공간을 점유하는 두루마리 형식의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영상 작업도 해 본 경험이 있지만, 먼 훗날 나의 오픈 월드가 데이터베이스를 가지게 된다면 그것으로 나만의 가상 공간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 정도만 하고 있다. 현재는 캔버스를 만드는 과정조차 행복할 정도로 회화에 몰두하고 있다.

캔버스 이야기를 듣고 문득 떠올랐는데, 회화 작가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캔버스와 싸우는 작가도 있고 캔버스를 달래는 작가도 있다. 뜬금없는 질문이지만 작가님은 어떤 타입인지 궁금하다.

최근 대학원 2년 동안은 완전히 싸웠던 것 같다. 그래서 회화가 새로운 세계를 향한 통로를 뚫는다는 표현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때는 원하는 것이 나올 때까지 벽에 몸을 부딪치는 느낌이었다면 요즘은 작업실을 구한 후 점차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작업실이라는 안정된 공간이 일상과 작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업실에 방문했을 때 작가님과 책 이야기를 나눴었다. 평소에 가까이 하는 책이나 영화가 인생관이나 작업에 생각보다 큰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작가님 역시 평소 책을 많이 읽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작업에 영향을 주었던 책 몇 가지만 소개 부탁드린다.

러시아의 양자물리학자였던 바딤 젤란드의 『리얼리티 트랜서핑』을 흥미롭게 읽었다. 인간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욕망이 뭉쳐 있는 것을 ‘팬듈럼’이라고 한다. 미술계의 팬듈럼에 맞춰 관계를 맺고 창작의 언어를 만들어서 ‘영혼과 마음이 일치하는 그림’을 그리라는 조언이 인상적이었다. 이 책이 어쩌면 작업적 지침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랑스 드빌레르의 『모든 삶은 흐른다』도 좋아한다. 삶을 바다에 비유하며 바다의 과학적 원리를 근간으로 삶의 원리를 탐구해보는 책이다. 카를로 로벨리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도 추천하고 싶다. 시간은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시간이야말로 환상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회화 안의 공간을 구축하는 데 있어서 시공간에 대한 개념을 확장시킬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던 책이다. 문소영 큐레이터님이 추천해 주신 다른 책들도 읽으려고 하고 있다.

작가님에게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서』를 추천했었다. 외로움과 허무 속에서 몽상하고 산책하면서 현실과 이상의 위계를 구분짓지 않은 채 인간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사유를 담고 있는 책이다. 작가님이 언젠가 가상세계와 유물론적 세계 사이에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설명할 때 난감할 때가 많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이 책이 그 고민에 대한 어떤 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마지막 질문을 드려야 할 것 같다. 이번이 첫 번째 개인전인 만큼 향후 계획에 대한 고민도 많을 것 같다. 현재 작업하고 있는 신작이나 예정된 전시 소식이 있다면 공유 부탁드린다. 신 올해 2월에 석사 과정을 수료했고 5월부터 첫 외부 작업실에 들어가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 몸과 마음이 홀가분해져서 그런지 회화 속 오픈 월드는 조금 더 단순해졌고, 화면 속 관념체들도 구체적 형상을 버리고 가벼워졌다. 그래서 더 풍경 자체에 주목하게 된다. 하지만 작업이 궁극적으로 어떻게 흘러갈지는 나의 회화적 몸이 더 정확히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플레이스막의 유디렉님이 내 작업이 회화적 단단함을 갖추기 이전의 단계에서 독특한 매력을 준다고 하셨는데, 그 부분을 벽화 작업으로 구현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전시의 경우에는 올해 연말에 더 소소 건물의 3층, 과거 ‘루이스의 사물들’이라는 카페였던 공간에서 3인전이 예정되어 있고, 12월에는 대안공간 루프에서 열릴 7인 회화전에 참여하게 됐다. 공간에서 허락한다면 작게나마 벽화 작업도 꼭 시도해보고 싶다.●

 


질의응답

 


전희정(갤러리 소소 큐레이터)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아바타들이 모두 정면을 보고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처음에는 아바타들이 본인의 오픈 월드를 산책자로서 관조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이들은 회화 안에서 바깥의 관람객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이 구도와 시점에 의도된 바가 있는지.


아바타라고 표현하신 인물의 얼굴 형상은 어릴 때부터 계속 낙서처럼 습관처럼 그려 오던 형태다. 특히 어머니가 언제나 미형의 얼굴들을 자주 그리셨고, 나도 그것을 따라 그렸다. 생각해보면 그 얼굴들도 결국에는 나 자신을 의미하는 것이고, 나를 대변하는 어떤 아바타이지만 그 존재의 당위성은 정확히 모르겠다. 다만 그림 안에서 나 자신을 위치시키는 방법 중 하나인 것 같다.

 

좌담에서 미처 하지 못한 질문을 덧붙이려고 한다. 어떤 작업은 세필로 세밀하게 그려진 작업이 있고, 어떤 작업은 면처럼 높은 밀도로 그려져 있다. 시기로 보면 1, 2년의 갭이 있는데 단기간에 이렇게 화풍에 변화가 생긴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가수가 음색을 조율하듯이 붓을 쓴다고 생각하고 있다. 조금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목 뒤에 집중을 하면서 붓을 쓴다. 신체적인 느낌에 의지해서 붓을 쓰면서 화면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 한계를 느꼈고 면을 채워나가기가 힘들었다. 우연히 노충현 작가님이 부채 붓을 사용해 보라는 조언을 해주신 적이 있는데, 부채 붓을 사용하면서 표현 방식에 변화가 생겼다. 신체와 붓의 조화가 잘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또 한가지 질문은 재료에 관한 이야기다. 작업실에 방문했을 때 작가님이 친환경적인 오일을 사용한다고 하셨다. 작업적인 태도와도 관련이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유해한 재료를 사용할 때 장갑을 끼고 작업하는 작가들이 많다. 하지만 장비를 갖추는 과정이 나에게는 불필요한 장벽처럼 보였고 그것을 없애야겠다고 생각했다. 친환경 재료를 사용하는 것은 오랜 시간동안 작업을 체화하면서 그림을 그리기 위한 방법이다. 요리사가 요리와 하나가 되어서 요리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시도들이 삶과 작업이 동일한 결 속에서 작동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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